포르투갈 역사

포르투갈의 국기는 2:3으로 분할된 초록과 빨강의 직사각형이 수직으로 배열되어 있고 분할선 중앙에는 포르투갈의 문장이 들어 있다. 문장 안쪽에 있는 파란색 도형은 본래 국왕이 쓰던 방패에 장식된 파란색 십자가였으나 십자가의 문양이 훼손되어 5개의 분할된 방패 모양으로 바뀌었다. 이후 방패 문양에 빨강 가장자리와 노란 성채를 더한 형태로 포르투갈 문장이 완성되었다. 1495년 왕정 시기부터는 문장 위에 왕관이 씌워졌고 1835년 마리아 2세 치하에서는 문장 바깥에 흰색과 파란색 배경을 사용했다.[12] 포르투갈령 아소르스 제도의 기에는 여전히 흔적이 남아 있어서 흰색과 파란색 배경을 사용한다. 1910년 혁명으로 공화국이 된 이후엔 왕관이 지워졌고 배경이 지금의 초록과 빨강으로 바뀌었으며 포르투갈 문양 바깥에 혼천의가 채워졌다. 초록은 희망을, 빨강은 1910년 10월 5일 혁명에서 흘린 피를 나타내고 혼천의는 새로운 항로의 발견으로 이룩한 포르투갈의 위대한 역사를 의미한다.

유럽의 중생대 지층들 중에서 쥐라기 지층이 광범위한 국가여서 알로사우루스, 루소티탄, 스테고사우루스, 다켄트루루스 등 말기 쥐라기에 번성했던 공룡의 화석들이 발견되거나 출토되기도 한다. 쥐라기의 지층으로 로리냐 층이 있다.

지중해에 접해 있지는 않지만 지중해에 가까워서 지중해성 기후고 유럽에서는 기후가 가장 온화한 편이다. 지금까지 포르투갈 전국에서 기록된 최저 기온은 영하 16도였는데 이 기온도 해발 1,500m가 넘는 산지에서 기록된 기온이다. 수도 리스본은 1월 평균 기온 11.6도, 8월 평균 기온 23.5도의 온화한 기후고 774mm인 강수량은 겨울에 집중되어 있다. 여름에는 일교차가 크고 낮에는 더워서 특히 남부 내륙 지역은 바로 밑 모로코처럼 50도 가까이 올라가기도 한다. 역대 최고 기온은 공식 기록상으로는 2003년 폭염 때 아마렐레자에서 기록된 47.4도이나 50도가 넘는 비공식 기록도 있다. 참고로 리스본의 위도는 38.73도로 남한 최북단보다도 더 북쪽에 있다. 남한에서 춥기로 이름난 철원군도 북위 38도밖에 안 된다.

산악 지형이 아닌데도 언덕이 많다. 리스본, 포르투, 코임브라 등 주요 관광 도시에서 도보 여행을 한다면 언덕길과 계단길을 빈번하게 오를 각오를 하는게 좋다. 그리고 최근에는 지진 활동이 없지만 예로부터 지진이 잦은 곳이었고 역사적으로 유럽 최악의 지진이라는 리스본 대지진이 발생하기도 했다.

참고로 포르투갈은 한국으로부터 가장 이동거리가 긴 유럽 국가이다. 아이슬란드, 영국, 아일랜드, 독일보다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이 한국에서 이동 거리가 더 멀다. 직항 노선 개설 이전에는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 환승해야 했지만, 2019년 3분기부터 아시아나항공에서 리스본 행 주 2회 직항편을 임시운행한다.

한국 관광객은 주로 스페인과 연계하여 리스본과 그 주변, 포르투, 몇몇 관광도시와 남부해변 정도를 단기로 찾는 편이지만, 유럽 내에서는 이외에도 휴양지인 마데이라 제도와 아소르스 제도, 해안선을 따라 걷는 코스인 호타 비센티나(Rota Vicentina)[13]가 서양에서는 아주 유명하다. 교통 인프라가 꽤 잘 되어있고 남유럽이다보니 따뜻한 바다가 있기 때문에 굳이 인기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여름에는 관광객이 구석구석 넘쳐난다.

원래는 포르투갈 백국이라는 아주 작은 나라에서 시작했다. 포르투갈 백국이라는 명칭에서 보다시피 국가원수의 작위가 고작 백작에 불과할 정도로 낮았으며 사실상 스페인속령 비슷한 신세였다. 국토 역시 지금의 포르투갈의 북쪽 절반만 해당되었으며 현재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은 포르투갈 백국 시절 당시에는 무어인의 영토였다. 그러던 포르투갈이 헤콩키스타를 거처 남쪽으로 점점 성장해 오늘날의 국토 모습을 갖췄다.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기 시작하면서 유럽인들의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이후 전 세계를 누비면서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곳곳을 식민지로 점령하면서 포르투갈 제국으로 대표되는 식민제국의 서막을 열기도 했다. 당시 교황의 중재 아래 스페인과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체결해서 전 세계를 양분할 정도의 해양 강대국이었다. 남아메리카의 브라질, 아프리카의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 인도의 고아, 중국의 마카오 등이 포르투갈 식민지였다.

하지만 식민지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부작용도 많이 생겨났다. 주앙 6세 시절에는 페드루 왕세자가 최대 식민지였던 브라질을 차지하고 1822년에 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브 연합왕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영향력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후 유럽의 이류 국가로 전락해서 강대국들 간의 패권 경쟁에서 소외되었다. 그나마 기니비사우, 앙골라,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 지역과 동티모르, 마카오 등 아시아 일부 지역의 식민지 해외 영토들만을 유지하면서 20세기까지 유지했지만 이 와중에 혁명과 군부 쿠데타, 36년간 집권한 독재자 살라자르와 카에타누 치하의 독재 정권을 겪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기니비사우, 앙골라,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 식민지의 독립 운동을 무력으로 저지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현지 독립 운동 세력들의 무장 투쟁이 거세게 불타오르면서 수렁에 빠진다. 식민지 전쟁에 막대한 국가 재정과 병력들이 투입되면서 힘이 상당히 분산되었고 결국 1974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독재 정권이 무너지면서 민주화가 되었다. 새로 들어선 민주 정부가 식민지의 독립을 인정하고 철군하면서 1974년 기니비사우의 독립을 시작으로 1975년 모잠비크, 카보베르데, 상투메 프린시페, 앙골라가 독립했다. 그리고 1999년 마지막으로 남은 해외 영토인 마카오를 중국에 반환하면서 포르투갈의 식민지는 모두 반환되었다.

식민지 역시 이중 식민지를 했는데 포르투갈의 식민지 브라질, 브라질의 식민지 우루과이라서 우루과이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의 식민지였으며 우루과이의 입장에서 본 포르투갈은 주인님의 주인님이었다. 물론 나중에 우루과이는 아르헨티나의 도움으로 독립에 성공했다.

포르투갈의 인구는 1,030만명으로 세계 242개국의 국가 중 79위다.[14] 비슷한 인구 규모의 국가로 벨기에(1,113만명), 스웨덴(955만명), 그리스(1,078만 명), 헝가리(995만 명), 체코(1,053만 명) 등이 있다. 면적은 대한민국보다 약간 작으며 인구는 대한민국 인구의 약 1/5 정도이다.

포르투갈은 상당히 변동이 심한 인구 변화를 보였던 국가다. 1965년 정도까지는 인구가 느리게 증가하다가 갑자기 인구가 다시 줄어들어서 정체해 있었고 서유럽의 다른 국가는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던 1975년부터 갑자기 인구가 증가했다. 다시 1985년부터는 인구가 조금씩 줄어들고 정체했다가 다시 느리게 증가를 시작했고 최근에는 다시 줄어들고 있어서 포르투갈은 심지어 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인구 변동이 불안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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